남아공 캠프스베이 스카우트 110년…13명으로 시작한 도전, 다음 세대로 이어져
지역의 모습을 담은 항건부터 이웃 스카우트와의 협력까지…110년 동안 스프링복스카우트 18명 배출
1916년 대원 13명으로 출발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1단 캠프스 베이 스카우트(1st Camps Bay Scout Group)가 올해 창립 110주년을 맞았다. 대원들이 모험과 봉사에 나서고, 지도자가 부족할 때는 이웃 스카우트와 힘을 합치며 활동을 이어 온 역사다. 그동안 캠프스베이 스카우트에서 남아공 스카우트 부문의 최고 급위인 스프링복스카우트에 오른 대원은 18명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스카우트연맹은 10월 31일 공식 홈페이지에 캠프스베이 스카우트의 역사를 소개했다. 컵스카우트 지도자 Cathryn Hodgkinson(캐스린 호지킨슨)은 창립 당시의 기록과 대원들의 성취를 전하며, 앞선 세대가 이어 온 활동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일이 오늘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말했다.
캠프스베이 스카우트의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5월 19일 시작됐다. 처음 13명이었던 대원은 그해 11월 72명으로 늘었다. 당시 대원들은 캠프스베이와 하우트베이 사이 해역에서 의심스러운 선박을 살피는 일도 도왔다. 호지킨슨은 창립 초기부터 지역사회를 위해 역할을 맡고 책임을 다하는 일이 활동의 일부였다고 설명했다.
항건에는 지역의 모습을 담았다. 당시 캠프스베이를 다니던 노면전차와 바다에서 색을 가져와 초콜릿색·레몬색·파란색을 골랐다. 호지킨슨은 이 항건이 여러 세대의 대원들을 스카우트 활동이 처음 시작된 곳과 이어 주는 상징이라고 소개했다.
창립 4년 뒤인 1920년에는 John Chicken(존 치킨)이 캠프스베이 스카우트를 대표해 영국에서 열린 제1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했다. 그는 남아공 대원 약 300명과 함께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다. 대원들은 화물칸에서 지냈고, 침대가 부족해 일부는 해먹에서 잠을 잤다. 영국에 도착한 대표단은 버킹엄궁을 방문해 국왕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사열을 받았다.
대원들이 꾸준히 모일 공간을 마련하기까지는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활동하던 캠프스베이 스카우트는 1932년 리틀글렌에 부지를 빌리고 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 1936년 설계가 승인됐지만 공사는 필요한 자금을 모은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회관은 Cyril Pearce(시릴 피어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을 기리며 지었다. Pearce Memorial Hall(피어스 기념회관)은 1939년 12월 21일 문을 열었고, 개관식에는 케이프타운 시장이 참석했다. 이후 주방과 컵스카우트 지도자실, 창고 등을 더하며 지금까지 대원들의 활동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이웃 스카우트와 어울리고 실력을 겨루는 일도 활동의 즐거움이었다. 1930년대에는 사이먼스타운 스카우트와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캠프스베이 스카우트는 ‘지는 해의 스카우트’, 사이먼스타운 스카우트는 ‘떠오르는 해의 스카우트’로 불렸다. 대원들은 축구와 크리켓 팀을 꾸려 다른 스카우트와 경기를 했고, 축구팀은 3년 동안 무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컵스카우트와 스카우트 대원들이 여러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상위권에 올랐다.
1990년대에는 지도자 부족으로 활동을 이어 가기 어려워졌다. 캠프스베이 스카우트에는 활발히 활동하는 컵스카우트가 있었지만 스카우트 대원들을 맡을 지도자가 없었다. 이웃한 그린앤드씨포인트 스카우트에는 소규모 스카우트 활동이 있었지만 컵스카우트를 맡을 지도자가 없었다.
두 곳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대원들의 활동을 이어 가기로 했다. 1998년 통합에 합의하고 이듬해 8월 20일 ‘1st Camps Bay/Sea Point’로 새롭게 출발했다. 새 항건은 카키색 바탕에 갈색·레몬색·파란색 테두리를 둘러 양쪽의 색을 함께 담았다. 2000년대 중반에는 컵스카우트 약 24명과 스카우트 약 18명이 활동했다. 통합 운영을 이어 오던 캠프스베이 스카우트는 창립 100주년인 2016년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호지킨슨은 시대에 따라 활동은 달라졌지만 대원들이 배우고, 책임을 맡고, 동료와 협력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최고 급위인 스프링복스카우트에 오른 18명 가운데 5명이 최근 10년 사이에 나왔다는 점에서도 대원들의 도전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우리는 110년의 역사를 돌아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며 “앞선 대원들이 오늘의 캠프스베이 스카우트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듯, 이제는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전통을 이어 갈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